네 마녀의 날인데 국제유가까지 뛴다. 경제 기사를 읽는 건지 공포영화 예고편을 보는 건지 모르겠다. 마녀도 한 명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굳이 네 명이다.
이름을 잠깐 치우면 정체는 의외로 사무적이다. 네 종류의 주식 관련 파생상품이 같은 날 만기를 맞는 것. 파생상품은 주식이나 주가지수 같은 다른 자산의 가격에 따라 값이 움직이는 계약이다. 오늘은 그 계약 여러 종류의 마감일이 겹쳤다.
계약을 정리하는 주문이 몰릴 수 있으니 시장이 부산해질 이유는 있다. 하지만 그게 곧 “오늘 주가는 반드시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의 네 마녀는 아래로만 빗자루를 타지 않았다.
2026년 9월 10일 한국 시장 기준으로 쓴 설명이다. 유가 상황은 이날 오전 보도를 기준으로 하며, 당일 증시 마감 결과를 분석한 글은 아니다.네 명의 정체부터 알아보자
마녀는 기관, 외국인, 개인, 공매도가 아니다. 다음 네 가지 계약을 가리킨다.
| 기준이 되는 것 | 선물 | 옵션 |
|---|---|---|
| 여러 주식을 묶어 나타낸 주가지수 | 주가지수 선물 | 주가지수 옵션 |
| 특정 회사의 개별 주식 | 개별주식 선물 | 개별주식 옵션 |
선물은 미리 정한 가격으로 미래에 사고팔기로 하는 계약이다. 실제 자산을 주고받는 대신, 정해진 가격과 만기 기준가격의 차액을 돈으로 정산하는 상품도 있다. 옵션은 정해진 조건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다. 옵션을 산 쪽은 그 권리를 행사할지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는 ‘약속과 권리’ 정도로 구분해도 충분하다.
그 대상이 코스피200 같은 지수인지, 특정 회사 주식인지에 따라 다시 둘로 나뉜다. 두 가지 계약에 두 가지 대상을 붙이면 네 가지다. 마녀 수를 늘리려고 복잡하게 만든 말은 아니다.
만기는 계약이 끝나는 때다. 휴대폰 약정처럼 가만히 두면 같은 계약이 계속 연장되는 게 아니다. 투자자는 만기 전에 정리하거나, 다음 만기 계약으로 옮기거나, 계약 조건에 따라 최종 정산을 맞는다. 만기 전에 기존 계약을 정리하고 뒤의 계약으로 옮기는 것을 **만기 교체(롤오버·rollover)**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마녀일까
영어 표현은 네 겹의 마녀 시간을 뜻하는 ‘쿼드러플 위칭(quadruple witching)‘이다. Dictionary.com의 설명에 따르면, 마녀가 나타나 마법을 부린다고 여겼던 밤의 ‘마녀의 시간(witching hour)‘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만기가 겹치며 거래가 요란해지는 모습을 그 시간에 빗댔다.
실제로 마법이 일어나는 것도, 불운을 예고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파생상품 동시만기일’이라고 하면 아무도 클릭하지 않을 것 같은데, ‘네 마녀의 날’이라고 하니 눈길부터 간다. 설명을 듣기 전부터 이름이 일을 한다.
한국에서 네 번째 마녀가 합류한 계기는 주식선물이었다. 한국거래소는 2008년 5월 6일 주식선물 거래를 시작했다. 그 뒤 2008년 6월 12일이 한국의 첫 네 마녀의 날이 됐다. 당시 마감 보도에도 ‘사상 첫 쿼드러플 위칭데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오늘은 한국 날짜다. 미국은 다음 주다
한국의 분기 동시만기일은 보통 3·6·9·12월의 두 번째 목요일이다. 휴장일이면 앞당겨질 수 있다. 한국거래소의 주식선물 명세에도 최종거래일이 각 결제월의 두 번째 목요일로 정해져 있다.
2026년 9월에는 그날이 9월 10일, 오늘이다. 미국의 이번 분기 만기일은 9월 18일 금요일이다. 나스닥의 지수·주식 옵션과 지수선물 만기 설명과 현재 CME의 개별주식 선물 명세에서 분기월의 세 번째 금요일이라는 기준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기사를 보고 미국 계좌에도 오늘 똑같은 행사가 있다고 생각하면 달력을 잘못 읽게 된다.
참고로 미국 자료에서는 ‘세 마녀’라는 말도 자주 보인다. 상품 구성이 바뀐 역사 때문이다. 나스닥의 2021년 설명은 미국 개별주식 선물 거래가 2020년에 중단된 뒤 세 마녀라고 불렀다고 설명한다. 다만 현재 CME에는 개별주식 선물이 다시 거래되고 있다. 오래된 설명의 ‘미국에는 주식선물이 없다’는 문장을 지금도 그대로 옮기면 틀린다.
나는 주식만 샀는데, 남의 계약 만기가 왜 영향을 줄까
대형 투자자는 실제 주식과 선물·옵션을 함께 들고 전략을 짜기도 한다. 한쪽의 가격 변동 위험을 다른 쪽으로 줄이는 식이다. 이런 위험을 줄이는 거래를 **위험회피(헤지·hedge)**라고 한다.
계약이 끝나면 그 계약 때문에 해뒀던 거래도 바꿔야 할 수 있다. 선물만 정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연결된 주식을 팔거나 사는 주문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나스닥은 만기에 위험회피 거래가 정리되면서 거래량이 커지는 원리를 설명한다.
호텔에서 단체 손님이 같은 시간에 체크아웃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손님마다 짐도 다르고 다음 목적지도 다르지만, 정산할 시간은 겹친다. 프런트가 붐빈다고 모든 손님이 같은 방향으로 떠나는 건 아니다.
시장도 비슷하다. 사야 하는 쪽과 팔아야 하는 쪽이 있고, 다음 계약으로 옮기는 쪽도 있다. 모든 투자자가 그날 주식을 강제로 파는 행사는 아니다. 미리 정리한 계약도 있고, 실제 주식을 주고받지 않고 차액을 현금으로 정산하는 상품도 있다.
따라서 거래량이 많다는 것과 주가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거래량은 바쁘게 오갔다는 흔적이고, 등락률은 결국 어느 쪽으로 얼마나 움직였는지다. 만기 주문이 쏟아져도 맞받아주는 주문이 충분하면 생각보다 조용히 지나갈 수 있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급락도, 상승도, 제자리도 있었다
아래는 결과가 달랐던 한국의 분기 동시만기일 네 사례다. 전체 만기일의 평균이나 상승 확률을 계산한 표는 아니다. 등락률은 전 거래일 종가 대비 코스피 종가 기준이다.
| 날짜 | 코스피 종가·등락률 | 함께 있었던 일 |
|---|---|---|
| 2008.6.12 | 1,739.36 −2.37% | 첫 네 마녀의 날. 유가 급등과 외국인 매도 부담 |
| 2020.3.12 | 1,834.33 −3.87% | 코로나19 충격과 미국의 대응에 대한 실망 |
| 2022.6.9 | 2,625.44 −0.03% | 장중 등락을 거듭한 뒤 거의 제자리로 마감 |
| 2024.9.12 | 2,572.09 +2.34% | 미국 반도체주 강세 이후 국내 반도체주도 상승 |
공교롭게도 첫날인 2008년 6월 12일에도 유가가 문제였다. 당시 보도는 유가 급등, 외국인 매도, 만기 관련 매도 물량 등이 겹쳤다고 설명한다. 오늘과 닮은 단어가 보인다고 같은 결과가 예약된 것은 아니다. 시장 상황도, 투자자들이 들고 있는 계약도 다르다.
2020년 3월은 코로나19가 금융시장을 흔들던 때였다. 그날의 하락을 마녀 네 명에게만 떠넘기면 팬데믹이라는 훨씬 큰 사건을 놓친다.
반대로 2024년 9월 12일에는 코스피가 2% 넘게 올랐다. 만기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승을 막지는 못했다. 2022년 6월 9일의 −0.03%도 재미있다. 종가만 보면 아무 일 없었던 것 같지만, 당시 기사를 읽으면 장중에는 내렸다가 오르는 흐름이 있었다. 끝값이 얌전하다고 하루 종일 얌전했다는 뜻도 아니다.
이 사례들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네 마녀의 날은 반드시 하락한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정도다. 평소보다 얼마나 더 흔들리는지, 어느 쪽이 더 자주 이기는지까지 알려면 전체 자료와 비교 기준이 필요하다.
유가까지 뛰는 오늘, 무엇을 나눠 봐야 할까
9월 10일 오전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전날인 9월 9일 국제유가 선물은 크게 올랐다. 브렌트유 11월물은 배럴당 101.21달러, +3.36%,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0월물은 **96.05달러, +3.25%**로 마감했다. 두 가격은 서로 다른 유종과 계약월의 선물 가격이다.
유가가 뛰면 기업의 연료비와 운송비, 물가 부담에 대한 걱정이 커질 수 있다. 반면 유가 상승을 호재로 받아들이는 종목도 있다. 이날 장 초반 관련 종목이 강세를 보였다는 내용도 같은 보도에 나온다. 유가가 움직인다고 모든 주식이 같은 방향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
오늘은 그런 뉴스에 반응하는 주문과, 만기가 와서 계약을 정리하는 주문이 한 시장에 들어온다. 화면에는 둘 다 매수·매도로 찍히니 구분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락을 전부 “만기 때문이니 내일 원상복구”라고 보는 것도 성급하다. 유가나 기업 실적에 대한 판단이 바뀐 것이라면 만기가 끝나도 영향이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만기 관련 주문이 집중된 움직임이라면 그 압력이 지나간 뒤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는 이름만으로 알 수 없다.
네 마녀의 날이라는 말을 보고 외워둘 내용은 ‘하락 예정’이 아니다. “오늘은 평소의 뉴스에 계약 마감 주문까지 섞이는 날이구나.” 그 정도를 알고 보면, 차트가 부산해져도 공포영화 배경음악을 자동으로 깔 필요는 없다.
특정 종목이나 파생상품의 매매를 권하는 글이 아닙니다. 대표 이미지 제작에는 AI가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