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간 회의 끝, 팀장이 슬라이드를 덮으며 한마디를 보탭니다.
“이제 AI 잘 쓰면 두 명이 하던 일도 한 명이 하겠는데.”
회의실은 웃습니다. 겉으로는 생산성 이야기입니다. 더 빠르게,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책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문장이 다른 모양으로 남습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어디로 가나?”
AI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내 일을 빼앗을 것 같아서만은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월급이 왜 필요한지 매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무섭습니다.
이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답이 개인 노력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면 된다, AI를 배우면 된다, 개인 브랜드를 만들면 된다, 유튜브를 해보면 된다. 다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동시에 더 똑똑해지고, 더 빠르게 일하고, 더 잘 팔리는 개인이 되어야만 살 수 있다면 이미 사회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AI는 자본주의의 가장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냅니다.
사람이 더 이상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경제는, 사람에게 무엇을 팔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싫어하지만 소비자는 필요하다
기업은 비용을 줄이고 싶어 합니다.
인건비는 크고,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아픕니다. 쉬어야 합니다. 기분이 흔들립니다. 이직합니다. 실수합니다. 임금을 올려달라고 말합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회사 입장에서는 사람부터 부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자동화는 언제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기계는 월급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는 퇴근하지 않습니다. AI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 번 잘 붙으면, 회사는 같은 매출을 더 적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주주는 좋아하고, 경영진은 효율을 말하고, 시장은 박수를 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기업은 노동자를 줄이고 싶지만, 소비자는 줄이고 싶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도 누군가의 고객입니다. 월급이 줄면 소비도 줄어듭니다. 소비가 줄면 매출도 줄어듭니다. 매출이 줄면 다시 비용을 줄입니다. 그러면 또 사람이 줄어듭니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비용으로 보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시장으로 필요로 합니다.
AI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여기 있습니다. 사람이 생산에서 빠져도 소비자로 남을 수 있는가. 월급이 약해진 사회에서 구매력은 어디서 오는가. 회사가 사람을 덜 필요로 할수록, 회사의 고객도 같이 약해지는 것은 아닌가.

해고보다 먼저 오는 것은 채용 중단이다
많은 사람은 AI 시대를 영화처럼 상상합니다.
어느 날 팀장이 와서 “이제 이 일은 AI가 합니다”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박스를 들고 회사를 나가는 장면입니다. 물론 그런 해고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더 조용한 방식으로 먼저 옵니다.
퇴사한 사람을 충원하지 않습니다.
신입을 덜 뽑습니다.
외주 단가를 낮춥니다.
세 명이 하던 일을 두 명이 하고, 두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합니다. 남은 사람은 AI 도구를 붙잡고 더 많은 일을 처리합니다. 겉으로는 고용이 유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일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이때 불안은 묘합니다.
나는 해고되지 않았는데도 밀려나는 기분이 듭니다. 내 일이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내 자리의 가격이 낮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과거에는 경력이 쌓이면 조금 더 안정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경력이 쌓일수록 더 비싼 사람으로 평가받아 위험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AI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느냐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일이 쪼개지고, 단가가 낮아지고, 사람에게 남는 몫이 줄어드는가.
국제통화기금은 2024년 분석에서 AI가 전 세계 일자리의 거의 40%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선진국에서는 그 비율이 약 60%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떤 일은 대체되고, 어떤 일은 보완되고, 어떤 일은 더 촘촘하게 감시받을 수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도 생성형 AI의 영향에 대해 직업 전체를 통째로 자동화하기보다 일부 업무를 자동화하거나 보완하는 효과가 더 클 가능성을 짚었습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불안은 “내 직업이 사라지느냐” 하나가 아니라 “내 직업 안에서 돈이 되던 부분이 얼마나 남느냐”에 가깝습니다.

모두가 개인 브랜드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요즘의 조언은 자주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회사에 기대지 마라.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라. 콘텐츠를 해라.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라. AI를 써서 혼자 더 크게 일해라. 팔로워를 모아라. 플랫폼에 올라타라. 네 이름으로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이 조언은 틀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는 살길입니다. 회사가 더 이상 오래 지켜주지 않는다면, 개인의 이름으로 기회를 만드는 능력은 중요해집니다. AI 도구는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큰 지렛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팀이 있어야 가능했던 일을 이제 한 사람이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모두에게 답이 되는 순간, 잔인해집니다.
모두가 유튜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강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창업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상품처럼 포장하고, 매일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알고리즘 앞에서 존재를 증명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개인 브랜드 사회의 문제는 성공한 개인이 있다는 게 아닙니다.
성공하지 못한 개인에게도 “너는 왜 너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지 못했느냐”고 묻는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회사가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이제는 개인이 자기 자신을 계속 고용 가능한 상태로 판매해야 합니다. 이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력서, 포트폴리오, 채널, 네트워크, 팔로워 수, 평판 점수로 쪼개집니다.
AI가 노동을 줄여줄 거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일은 줄어드는데, 나를 팔아야 하는 시간은 늘어나는 방식으로.
문제는 자본주의가 끝나느냐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언젠가 끝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역사에 영원한 제도는 없었습니다. 왕이 당연하던 시대도 있었고, 땅을 가진 사람이 사람의 삶을 지배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어떤 체제는 전쟁으로 무너졌고, 어떤 체제는 기술과 도시와 금융의 변화 속에서 천천히 낡았습니다.
자본주의도 자연법칙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끝나느냐”보다 “어떤 압력을 받느냐”입니다.
체제는 어느 날 갑자기 간판을 바꾸지 않습니다. 먼저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집니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돈이 흐르는 길이 바뀌고,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지점이 바뀝니다. 그다음에 언어가 바뀝니다. 예전에는 당연하던 것이 갑자기 이상해 보이고, 이상하게 보이던 것이 현실적인 선택지처럼 보입니다.
AI 이후의 변화도 아마 그렇게 올 가능성이 큽니다.
“자본주의 끝”이라는 선언보다 먼저, “이대로는 사람들이 버티기 어렵다”는 감각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월급만으로 살기 어렵다. 그런데 월급 받을 자리는 줄어든다. 투자는 해야 한다. 그런데 투자할 원금은 없다.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주목받을 수는 없다. AI를 배워야 한다. 그런데 AI를 배운 사람끼리도 다시 경쟁한다.
이 모순이 쌓이면 사람들은 묻게 됩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일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사람을 어떻게 사회 안에 남겨둘 것이냐고.

해법은 돈 한 줄보다 넓어야 한다
이 질문이 나오면 기본소득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AI가 많은 일을 대신한다면, 그 생산성의 일부를 사람들에게 나눠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충분히 자연스러운 질문입니다.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 길이 좁아진다면, 소득을 얻는 다른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기본소득은 마법의 단어가 아닙니다.
돈을 얼마 줄 것인지, 어디서 걷을 것인지, 집값과 의료비와 교육비가 그대로라면 그 돈이 실제 안전망이 될 수 있는지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온다면 한 가지 제도 이름으로 오기보다는 여러 조합으로 올 가능성이 큽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식. AI로 생긴 이익에 더 강하게 과세하는 방식. 공공 인프라나 데이터, 기술 생산성의 일부를 배당처럼 나누는 방식. 의료, 주거, 교육처럼 삶을 무너뜨리는 큰 비용을 시장 밖에서 더 많이 책임지는 방식.
무엇이 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AI가 정말 생산성을 크게 올린다면, 그 생산성이 누구의 것인지 묻는 싸움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개인이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사회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되면 안 됩니다.
이 시대의 가장 쉬운 거짓말은 모든 구조적 불안을 자기계발 문제로 바꾸는 것입니다. 일자리가 불안하면 공부해라. 임금이 낮으면 몸값을 올려라. 플랫폼이 바뀌면 적응해라. AI가 나오면 프롬프트를 배워라. 다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계속 듣다 보면 이상해집니다.
왜 변화의 이익은 조직과 자본에 먼저 쌓이고, 변화의 불안은 개인에게 먼저 배달되는가.
AI가 생산성을 올린다면 회사는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투자자는 더 높은 가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에게 돌아오는 말이 “더 배워서 살아남아라”뿐이라면, 사람들은 언젠가 납득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회가 해야 할 질문은 더 노골적이어야 합니다.
AI로 줄어든 노동시간은 누구의 시간이 되는가.
AI로 늘어난 이익은 누구의 소득이 되는가.
AI 때문에 낮아진 단가는 누가 떠안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술 발전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 발전의 비용을 각자 할부로 갚게 됩니다.
자본주의 이후는 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안전감에서 시작된다
나는 자본주의가 곧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아주 강하게 적응할 겁니다. AI도 상품이 되고, 생산성도 상품이 되고, 개인의 불안도 교육 상품과 컨설팅 상품과 구독 상품이 될 겁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도구를 사고, 더 많은 강의를 듣고, 더 많은 플랫폼에 자신을 올릴 겁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결말은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너무 잘 적응해서, 사람만 계속 더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 출발점은 거창한 혁명보다 작은 안전감일지도 모릅니다. 아파도 무너지지 않는 안전감. 몇 달 쉬어도 인생이 끝나지 않는 안전감. 아이를 키워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지 않는 안전감. 회사가 나를 덜 필요로 해도 사회가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안전감.
사람은 일해야만 존중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는 너무 오랫동안 사람의 존중을 월급명세서에 묶어두었습니다. AI가 그 월급명세서를 흔든다면, 우리는 결국 다시 물어야 합니다.
사람의 자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지금 필요한 질문
AI가 자본주의를 끝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AI가 자본주의의 약한 부분을 더 빨리 드러낼 가능성은 큽니다. 사람을 비용으로만 줄이면, 결국 고객도 줄어듭니다. 개인에게만 적응을 요구하면, 결국 사회의 신뢰도 줄어듭니다. 생산성은 오르는데 삶이 더 불안해진다면, 사람들은 언젠가 그 생산성을 축복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질문은 “AI를 막을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막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질문은 이것에 가깝습니다.
AI가 만든 부와 시간을 누구의 삶으로 돌려줄 것인가.
그 답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더 똑똑한 도구를 들고 더 불안한 사회에 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자본주의의 변화는 사상가의 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아주 단순한 피로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하는데, 왜 점점 내 자리는 좁아지는가.”
그 질문이 충분히 커지면, 어떤 시대도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는 어렵습니다.